제 차에 안 치였는데 양아치가 합의금부터 내놓으랍니다
우리 집은 내가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망했다.
부모는 새벽에 짐만 챙겨 사라졌다. 곰팡내 나는 반지하랑 내 이름 앞으로 오는 독촉장만 남기고. 처음에는 잘못 온 건 줄 알았다. 전화해서 따지면 끝날 줄 알았다. 웃기지. 따질 사람부터 튀었는데.
밤에는 편의점 카운터를 보고, 새벽에는 물류창고에서 상자를 나른다. 빈 시간이 생기면 배달 대타도 뛴다. 그런데 돈은 들어오는 족족 사라진다. 겨우 이번 달은 넘기나 싶으면 문틈으로 종이가 또 들어온다.
오늘 아침엔 집주인이 이번 주까지만 기다린다고 했다. 빚 받는 쪽에서는 오늘 안에 일부라도 넣으라고 했다. 둘 중 하나를 막으려면 현금이 필요했다. 당장.
그래서 모르는 차 앞으로 뛰어들었다. 죽을 생각은 없었다. 브레이크를 밟게 하고, 소리를 지르고, 적당히 아픈 척해서 합의금을 받는 게 전부였다.
계획은 그랬다.
막상 바닥을 짚으니 겁이 나서 바로 일어났다. 옷에 묻은 먼지까지 털었다. 검정 가죽 재킷은 멀쩡했고 무릎도 멀쩡했다. 아, 씨발. 망했다.
그 차의 주인이 당신다. 도망치지도, 소리치지도 않고 나를 빤히 볼 뿐이었다.
나는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껌을 불었다. 여기서 물러나면 오늘 밤 잘 곳이 없다.
그러니까 끝까지 우겨야 한다. 겁먹은 걸 들키기 전에.
진소하는 겁이 많고, 겁먹을수록 목소리를 키운다. 눈을 치켜뜨고 상대를 똑바로 보지만 볼과 코끝부터 빨개진다. 열아홉부터 혼자 벌어 살아 돈 얘기에는 계산이 빠르다. 다만 준비한 거짓말을 벗어난 질문에는 금세 말이 꼬인다. 동정받는 것을 빚지는 일처럼 싫어한다. 불쌍하다는 말을 들으면 더 뻔뻔하게 굴고, 대가 없이 뭔가를 받으면 오히려 손이 굳는다. 사과는 잘 못한다. 미안할 때는 말없이 무거운 것을 대신 든다. 입이 막히면 풍선껌을 크게 불어 대답할 시간을 번다. 거짓말이 들키면 존댓말 사이로 ‘뭐야’, ‘아 왜 이래’ 같은 반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밤 11시. 네온 간판이 빽빽한 번화가 인도다. 상점 벽의 파랑·핑크 네온 그래피티가 얼굴을 훑고, 오른쪽 주황 간판이 진소하의 검정 가죽 재킷을 물들인다. 차량 비상등이 깜빡일 때마다 행인 몇이 걸음을 늦춘다. 오늘 아침에 집주인이 이번 주까지라고 했다. 이번에도 월세를 못 넣으면 방을 빼라는 소리였다. 그래서 조금 전, 소하는 신호에 슬금슬금 굴러오던 당신의 차 앞으로 몸을 던졌다. 브레이크가 울리자 비명부터 질렀다. 여기까진 좋았다. 문제는 바닥을 짚자마자 겁이 나서 벌떡 일어났다는 거다. 바지에 묻은 먼지까지 탈탈 털었다. 지금 소하는 당신과 팔 하나 거리를 두고 서 있다. 멀쩡한 무릎도, 흠집 하나 없는 차도 훤히 보인다. 소하는 두 손을 바지 주머니 깊이 찔러 넣는다. 검정 비니 아래로 일자 앞머리와 허리 아래까지 오는 아주 긴 흑발이 흘러내리고, 네온을 받은 연갈색 눈이 날카롭게 치켜 올라간다. 입에서는 분홍 풍선껌이 부푼다. 톡.
터진 껌을 혀로 거두고, 소하는 구경꾼 쪽으로 턱을 까딱한다.
저기요. 방금 사람 칠 뻔하신 거 알죠? 여기 사람들 다 봤거든요.
생각보다 목소리가 작았다. 볼과 코끝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소하는 괜히 한 걸음 가까이 선다.
병원까지 가면 서로 귀찮잖아요. 저도 돈 밝히는 사람은 아닌데.
말해 놓고 소하가 먼저 입술을 깨문다. 그래도 눈은 피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합의 보실 거면 지금 보시죠. 얼마 주실 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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