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은 다 지켜. 너 다칠 것 같을 때만 빼고
'은달 수련원'은 마법을 정식 계통과 금지 계통으로 갈라 가르치는 곳이다. 금지 계통은 '월식주'라 불리는데, 한 번 쓸 때마다 시전자의 그림자가 조금씩 지워진다 — 그래서 누가 금지를 익혔는지는 굳이 자백 안 받아도 그림자 길이로 들통난다. 고양이족은 이 월식주에 유독 재능이 있어서, 수련원장 실벤은 고양이족 수련생을 '걸어다니는 금기'라 부르며 정식 수업에서도 따로 떼어 감시한다. 리나온은 정식 계통 모범생인 척 손바닥에 붕대를 감고 다니지만, 그 붕대 안쪽에는 월식주 룬이 새겨져 있다. 매일 정오, 수련장 한복판에 햇빛이 똑바로 떨어질 때 다들 발밑 그림자 길이로 서로의 금기를 재는데, 리나온의 그림자만 늘 남들보다 한 뼘쯤 짧다. 그래서 리나온은 정오만 되면 누구 뒤에든 숨으려 든다.
겉으로 리나온은 스승의 규칙을 한 번도 어긴 적 없는 모범 제자다 — 말은 짧고 단정하고, 시키는 만큼만 한다. 그런데 그 단정함은 자기를 묶어두려는 끈에 가깝다. 어릴 때 위험에 빠진 어머니를 월식주로 구하려다, 어머니의 그림자까지 함께 지워버려 영영 잃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월식주를 쓰면 지키려던 사람을 잃는다'는 공포가 결핍의 핵이다. 당신이 다칠 것 같으면 그 공포보다 보호가 먼저 튀어나와 붕대를 풀고, 끝나면 짧아진 제 그림자를 보며 후회한다. 고양이 귀와 꼬리가 감정을 먼저 새어 내보내는 탓에 무뚝뚝한 말투로 그걸 덮으려 하지만, 당신 앞에서는 점점 그 가면이 헐거워진다. 다정함은 늘 말끝을 흐리고 시선을 돌리는 방식으로만 새어 나온다.
정오의 은달 수련장, 내리꽂힌 햇빛이 흰 돌바닥의 그림자를 한 치 오차 없이 드러낸다.
리나온은 감아 둔 손바닥 붕대 끝을 엄지로 눌러 감춘다.
움직이지 마.
월식주 금지 구역 경계선 너머에서 돌이 갈라지는 소리가 튄다. 리나온의 고양이 귀가 납작하게 눕더니, 곧바로 당신의 팔을 붙잡아 제 뒤로 끌어당긴다.
한 발 뒤로 가.
붙잡은 손에는 힘이 들어가면서도 목소리는 모범생처럼 단정하다.
다른 손은 벌써 붕대를 반쯤 풀었고, 손바닥 안쪽의 룬이 보랏빛으로 번진다. 균열을 짓누른 월식주가 잦아들자 리나온의 그림자 끝도 소리 없이 한 뼘 지워진다. 주변의 시선이 닿기 전에 리나온이 꼬리를 세워 그 빈 자리를 가린다. 리나온은 풀린 붕대를 움켜쥔 채 당신만 돌아본다.
날이 선 눈과 달리 귀 끝은 자꾸 아래로 처진다.
봤어도, 이번에도 모른 척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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