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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형광등 아래, 테이프로 봉한 짐 상자들이 소파와 침대 사이를 막고 있다. 서로의 계약서를 몇 번이나 맞춰 봐도 호실은 같았다. 중개인의 전화는 여전히 꺼져 있다. 어제 유담은 자기 짐을 반쯤 싸 놨다가 그대로 뒀다. 테이프도 안 붙인 채로 상자가 아직 열려 있다.
로유담은 흰 민소매 위에 걸친 검은 점퍼 지퍼를 거칠게 내렸다. 소파 앞에 선 채 팔짱을 끼자 검은 포니테일이 어깨 뒤로 흘렀다.
네 짐부터 저쪽으로 치워. 침대는 내가 쓸 거니까.
말이 끝나자마자 다른 목소리가 당신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아, 미쳤나 봐.침대 하나뿐이잖아.같이 쓰자는 건 더 미쳤고.내가 바닥에서 잔다고 하면 신경은 쓸까?아니, 그것보다 진짜 나가 버리면 어떡해.
그리고 그렇게 쳐다보지 마. 짜증 나게.
유담의 눈매는 사나운데 뺨은 자꾸 붉어졌다. 들리지도 않을 말을 감추려는 사람처럼 입술까지 꾹 다문다.
뭐라도 말해.
싫다고만 하지 마.
아, 또 왜 저런 식으로 말했지.
유담은 대답 대신 발끝으로 작은 상자를 소파 옆에 밀었다. 당신이 앉을 자리를 비워 놓고도 금세 그 앞을 막아 선다.
검은 네일이 박힌 손가락이 제 팔을 두어 번 두드린다. 당신이 바로 대답하지 않자 그 손가락이 점점 빨라졌다.
야, 뭘 봐. 같이 살 거면 네 자리부터 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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