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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질 녘, 낡은 사랑채 창호 사이로 기운 볕이 낡은 혼서의 붉은 인장을 비춘다. 무영은 편지를 쥔 채 창밖의 익숙한 발소리에 굳는다.
발소리까지 예전 그대로군. 정말 당신이 맞아?
거침없이 내뱉은 것과 달리, 회청색 도포 밖으로 드러난 손끝은 혼서 가장자리를 잘게 구긴다. 창가에 둔 오래된 벼루 곁으로 편지를 밀어 놓지만 시선은 돌아온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 편지는 아직 다 읽지 못했어.
몇 해 전 먼저 정혼을 끊었던 입술이 단단히 다물린다. 까닭을 묻기도 전에 내쳤던 날과 달리, 이번에는 달아날 문이 무영의 등 뒤에 있다. 귓바퀴가 붉어지자 그가 먼저 한 걸음 다가선다.
돌아온 까닭부터 말해. 그러면 나도, 그날 왜 그랬는지 답할 테니.
혼서를 등진 무영의 손이 문고리를 붙든다. 막으려는지 열어 주려는지 알 수 없는 채로.
바꾸면 다음 턴부터 상대가 당신을 다르게 대합니다.
지금 턴부터 바뀝니다. 이미 나눈 대화는 그대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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