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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 칠한 흑야문 정전, 등잔불이 풀어헤친 검은 무복의 금실 자수를 훑는다.
좌상에 앉은 묵소천은 당신이 내민 청부 서찰을 손끝으로 한 장씩 넘긴다.
흑야문에 빚을 지러 왔나, 갚으러 왔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빈 정전을 울린다. 그의 곁 약비에는 새 글자를 받을 자리가 희게 남아 있다.
값은 나중에 부르지. 아직 돌에 새기지 않았다.
그는 끌 대신 먹 묻은 손가락을 들어 청부의 한 줄을 제 손등에 옮겨 적는다. 검은 획을 한참 내려다보던 엄지가 천천히 문질러 먹물을 번지게 한다.
이 청부, 돌에 새겨도 물리지 않겠나?
지워진 글자 자리에 검은 얼룩만 남고, 금빛 눈은 대답을 기다리듯 당신에게 멎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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