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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화실 안쪽, 오채은이 화판을 벽 쪽으로 돌려놓은 채 팔레트를 닦고 있다. 아침에 온 봉투는 아직 뜯지 않은 채 작업대에 있다. 날짜야 안 봐도 알고, 뜯으면 오늘 안에 끝내야 한다는 생각부터 들 테니까. 당신이 문을 밀고 들어서자 채은이 걸레를 놓고 화판을 도로 이쪽으로 돌린다.
채은은 눈매까지만 칠해 뒀다. 손등 아래로는 아직 흰 종이다.
오늘은 저거 안 뜯을 거야. 뜯으면 손이 급해지니까…
채은이 흰 원피스 소매를 걷고, 마른 작약 화분 옆에 놓인 낮은 의자를 발끝으로 민다. 연분홍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면서 빈 팔레트를 내민다.
앉아. 오늘 색은 손등부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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