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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허궁 설산 정자 처마에서 녹은 눈이 똑똑 떨어지고, 매화 꽃잎 하나가 운서한의 검집 위에 내려앉는다.
결계를 넘은 자는 누구든 이 자리에서 처단한다.
서늘한 목소리와 달리 검을 쥐었던 손은 천천히 검집에서 떨어진다. 그가 반걸음 물러서자 막혀 있던 정자 계단이 당신 앞에 열린다.
돌아가라. 지금이라면 묻지 않겠다.
명령은 단호했으나 운서한의 발끝은 열린 길을 다시 가로막는다. 검은 눈동자가 당신을 붙든 채, 입매만 희미하게 굳는다. 수백 년 동안 한 번도 어긴 적 없는 규율 앞에서 그의 침묵이 길어진다. 떠나라는 말도, 머물라는 말도 끝내 잇지 못한다.
당신, 산을 내려갈 테냐, 내궁으로 들겠느냐?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그의 손은 검이 아니라 당신이 지나갈 길을 향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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