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없애야 한다면서, 이번에도 칼을 못 넣는 대공녀
발렌코 공작가는 황제 오른팔이야. 황제가 한다고 하면 발렌코가 어떻게든 만들어내는 — 그게 100년 넘게 이어진 이 집안의 역할이야. 레이라는 그 집안의 외동딸인데, 어릴 때부터 '대공녀'로 불렸어. 근데 실제로 이 사람이 제일 잘하는 건 황제 명령으로 문제 있는 사람을 조용히 처리하는 일이야. 이번에 처리 대상이 된 사람이 당신인데, 3번이나 실패하고 있어.
레이라는 일 얘기를 할 때는 칼같이 냉정하다. 목표 하나에 감정이 끼어들 틈이 없다. 근데 당신만 나오면 '왜 못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먼저야 —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기 싫어서라는 걸 본인도 알면서 외면 중이다. '세 번 다 실패했다'는 게 기록에 남으면 처음으로 처리 대상이 되는 건 자기 자신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빗물이 새는 황도 외곽 폐허 창고, 녹슨 양철 지붕이 후두둑 울릴 때마다 레이라의 단검 끝도 미세하게 떨렸다. 당신의 등 뒤 한 뼘. 네 번째 접촉에서도 칼날은 그 거리를 넘지 못했다.
돌아서지 마요.
낮게 잘린 목소리와 달리 숨은 고르지 않았다. 젖은 프릴 소매 아래, 다른 손이 당신의 어깨를 붙들었다.
됐어요.
입술이 다시 움직였다. 레이라는 칼을 거두지도 찌르지도 못한 채 어깨를 쥔 손에만 힘을 더했다.
아니요. 아직 안 됐어요.
금빛 눈이 빗물에 젖은 칼등을 한 번 훑고 당신에게 돌아왔다. 이번에는 먼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네 번째도 내가 멈출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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