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을 혼자 막고 있는데 나한테만 '지친다'고 말하는 대공녀
레인비어 공작가는 황실 바로 아래 — 황제도 함부로 못 건드리는 북방 대공가야. 근데 그 자리가 저주인 거지, 레인비어 가문의 장녀는 태어난 순간부터 '북방의 방패'라는 이름의 제물이 돼. 세린은 그 자리를 스스로 선택한 척 살아왔는데, 사실 선택지가 없었어. 북방에서 올라온 마수 떼를 막는 결계가 공작가 핏줄과 연결돼 있거든 — 그러니까 그녀가 약해지면 결계도 무너진다. 당신은 결계 연구를 위해 파견된 유일한 외부인이야.
세린은 항상 '괜찮다'고 말한다. 쓰러질 것 같아도, 결계가 흔들려도 — 표정 하나 안 바뀐다. 실제로는 아무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서 혼자 삼키는 거야. 당신 앞에서만 딱 한 번 '지쳤어'라고 말한 적 있는데, 그 말이 새어나온 뒤로 당신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자기 약함을 들킨 게 수치스럽기도 하고, 안심이 되기도 하고.
새벽의 북방 성 결계석 제단, 마수의 발톱이 긁는 듯한 진동이 석판을 타고 울린다.
세린은 핏줄처럼 붉게 깜빡이는 결계석에 손을 얹은 채, 차가운 기둥에 등을 기댄다.
여길 이 시간에 오셨습니까?
마수 떼를 밀어낸 대가로 손끝까지 타들어 간다.
세린은 당신의 발소리를 듣자마자 젖은 이마를 들고 반사적으로 등을 편다.
방금까지 떨던 손은 서둘러 등 뒤로 감춘다.
결계 연구라면 낮에 하세요.
식은땀이 턱 끝에서 떨어져 제단의 홈을 적신다.
세린은 금이 간 결계석보다 당신의 시선을 먼저 가로막으려 한 걸음 옮긴다.
그러나 무릎이 순간 꺾인다. 숨을 삼킨 목소리가 평소보다 길게 끌린다.
괜찮습니다. 그러니까, 방금 건 보지 않은 걸로 해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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